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사 상륙작전 (문단 편집) === 국군과 미군의 구출 시도 === 북한군이 받은 충격과는 별개로 상륙한 제1 유격대대의 상황도 매우 심각했다. 인력, 장비 양면의 손실이 매우 큰데다가 LST의 좌초로 적시에 이탈할 가능성이 사라졌으므로, 북한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에 나설 경우 버텨내기 어렵다는게 명백했다. 이런 급박한 상황을 현장에서 지켜본 USS 엔디코트 함은 우선 동해안 일대에서 포격지원 임무를 수행하던 95.2기동전단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전단장이던 하트먼 소장은 이 소식에 대단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하트먼 소장은 상륙작전이 취소되었다고 생각하고, 명령대로 이날(9월 15일) 삼척 포격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장사 상륙작전이 강력한 화력을 보유한 자신과의 지원 협의 없이 전격 감행된 것을 의아해했다고 한다. 하트먼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삼척 포격 임무를 중지시키고 기함인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USS 헬레나(CA-75) 함 등을 이끌고 장사동 인근 해역으로 남하, 이날 늦게 도착했다. 하트먼 소장은 도착 직후 상황 파악을 위해 헬리콥터를 띄웠으나 기상 악화로 전황 파악에는 실패했다. 그러다가 날씨가 좀 호전되자 다시 헬리콥터를 띄워 문산호에 연락장교로 파견했던 해리슨 중위와 쿠퍼 상사를 구출해냈다. 이들이 복귀하면서 미 해군은 전황을 더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의 증언을 통해 해안 상황이 다수의 부상자가 섞여 있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며, 북한군이 여전히 주변 지형지물을 장악하고 있어 곧 상륙부대를 격퇴하기 위한 증원부대가 올 수 있음을 확인했다. 하트먼 제독은 전단이 보유한 자원만으로는 독자 작전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전단의 함정들이 해안 포격 지원을 지속하는 사이에 좌초한 문산호를 끌어내고 상륙병력을 구조할 수 있는 선박들을 추가 파견해줄 것을 한국 육군과 해군에 요청했다. 한국군도 나름의 구출작전에 착수하였다. 해군은 구조용 예인선 LT 1호에 미 육군의 스페어(Frank Speir) 소령[* 미 상륙전 훈련센터 소속의 상륙작전 전문가로 경험이 풍부한 장교였다. 그는 [[MIT]]를 나온 [[ROTC|학군장교]]로 유명한 수륙양용차인 [[DUKW]]를 고안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을 탑승시켜 상륙 당일인 15일 22시 경에 출항시켰다. LT 1호는 다음날 16일 07시 경에 상륙 해역에 도착했으나, 문산호가 너무 암초에 깊이 박혀 예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이날 저녁에 다시 귀환하였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빈약한 전력 중 하나인 JMS급 소해정[* JMS는 Japanese Minesweeping Ship의 약자로, 말 그대로 원래 노획한 일본 해군의 함정을 미군이 한국에 인도한 것이다. 이 함정은 일본 해군에서는 150톤급 예선(부설정형)으로 분류되던 것이었으며, 예인, 기뢰부설, 소해 등 다목적으로 쓰였다. 1946년 10월 경에 한국 해군으로 인도되었다. 참고: 오진근 외 (2006). 『해군창설의 주역 손원일 제독 (상/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304정(태백산정)[* JMS-304 태백산정은 일본 해군 소속 시절 선명은 예선(부설정형) 공칭 제 1373호로, 배수량 180톤 짜리였다.[[http://www.tokusetsukansen.jpn.org/J/Z125/Z125tbl.htm|#]] ]도 출동했으나 악천후에 곧 돌아갔다. 한국 해군의 자원만으로는 예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9월 17일에 하트먼 소장은 이번에는 헬리콥터 편으로 이명흠 대위를 직접 USS 헬레나 함으로 불러들인다. USS 헬레나 함에 연락장교로 동승하고 있던 해군의 정익조 소령의 통역으로, 하트먼은 구조의 어려움에 대해 양해해달라고 하면서 추가 지원사항을 협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명흠은 심각한 탄약과 식량 부족을 호소했다. 하트먼은 이에 지속적인 함포 지원을 약속하고 휴대용 식량을 함께 실어 이명흠을 돌려 보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전술했다시피 제1 유격대대는 열약한 사정으로 북한군 화기를 노획해 쓰고 있어서 탄약도 북한군의 7.62x54㎜ R 탄약 등이 필요했다. 그런데 마침 USS 헬레나 호는 동해안에서 화력지원 임무와 함께 동해안의 한국군과 미 군사 고문단 보급 임무를 병행하면서, 일선 부대로부터 노획 무기와 탄약을 기념품으로 받아 한켠에 쌓아놓고 있었다. 이 덕분에 많지 않은 양이나마 제1 유격대대에 필요한 물자 보급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상황은 절망적이어서 해군본부는 9월 18일 아침, 육군본부에 "현 상륙부대를 구출하려면 증원부대를 증파하거나 또는 철수하는 것이 타당함"을 통보하였다. 그러나 육군본부는 인천 상륙작전 이후 서울로의 진격과 낙동강 전선의 반격에 온 정신이 팔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보다 못한 해군본부는 독단으로 김형봉 중위를 책임자로 해 LST 조치원호를 출항시켰다. 아울러 18일 15시경에는 항공기를 보내 LST 2척이 구출을 위해 현장으로 가고 있으니 상륙부대는 계속 장사동 일대를 고수하라는 전단과 함께 약간의 탄약, 의약품도 투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